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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더미에 묻혀버린 꿈…"한국서 8년 번 돈 다 날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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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8-3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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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서 공장에서 일하다 왔어요. 8년 동안 일을 했는데 한국에서 벌었던 돈이 다 날아가 버렸어요."


자녀 3명을 포함해 가족 6명이 함께 생활했던 집이자 일터를 한순간에 잃게 된 주민 노보라지 우쁘레띠(38)씨는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있으면서 공장에서 일하면서 끌어모은 전 재산으로 강가에 식당 겸 숙박업소를 차렸는데 이번 네팔 대홍수로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

지난 29일 오전(현지 시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구불구불한 산등성이와 비포장도로를 2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누와코트 지역 비두르시(市)의 한 마을.

이번 네팔 홍수로 범람한 트리슐리강가에 인접한 이 마을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한 아수라장이었다.


이곳은 이번 네팔과 중국 티베트가 맞닿아있는 산사태 발생지역부터 네팔의 대홍수가 이어진 트리슐리강의 아래쪽 지역으로 9명의 한국인 실종자가 발생한 어퍼트리슐리-1 수력발전소 건설현장보다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비교적 강 아래쪽에 위치한 터라 상류에서 알린 홍수 소식을 듣고 급하게 대피한 탓에 인명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마을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흙더미에 파묻힌 상태였다. 


흙탕물로 바뀐 강물은 여전히 거세게 흐르는 가운데 그 위로 이어진 마을 건물들은 진흙에 파묻혀 아예 형체가 없는 경우가 상당수였고 관공서나 은행 등 일부 높은 건물들은 반쯤 파묻힌 채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 아래쪽 강가부터 시선 위쪽의 가파른 언덕까지 십여 미터 높이는 되어보이는 곳까지 한때 토사가 쌓였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발밑은 여전히 상당한 흙더미로 덮인 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곳들이 이어졌다.


한때 시장 거리가 있었다는 길은 이미 흔적도 없이 파묻혀버렸고 파손된 도로에 45도로 걸쳐 버려진 트럭도 눈에 들어왔다.

푹푹 찌는 더위와 습기 속에 곳곳에서는 토사에 묻힌 축사 등 때문인지 가축의 사체가 썩는 듯한 악취도 풍겨났다.

이곳부터 시작해 더 큰 피해를 입은 윗마을 방향으로는 더 이상 외부인들의 진입이 금지된 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취재진들도 이곳에서 네팔의 참상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다만 이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복구하려는 희망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이웃들을 도와 수해를 입은 집들에서 그나마 남은 가재도구들을 꺼내는가 하면 불도저 등 현장에 동원된 중장비들은 분주하게 오가면서 물건과 사람들을 실어나르며 복구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천진난만한 마을 아이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외국인 기자들이 신기한 탓인지 연신 기웃거리며 취재 장비들을 살펴보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이처럼 수색과 복구작업이 막 시작되고 있는 피해지역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이곳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이자 당분간 이어질 고통의 무게를 가져다 준 아픈 기억이다.

자신의 일터가 날아가버린 우쁘레띠씨는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했다.

"당시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저는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에서 나온 장면처럼 한꺼번에 흙탕물이 흘려내려와 어떻게 도망치고 아이들을 위로 올려보냈는지 기억이 날 상황이 아니었어요."

불과 집이 흙더미에 잠길 당시 불과 2분 차이로 아이들을 살렸다는 그는 "우리 가족은 가게만 피해를 입었지만 여기서 조금 더 위쪽에 있는 마을에 살고 있던 이모 가족은 전부 다 연락이 안 된다"며 슬퍼했다.


또 "지금 토사 제거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집까지는 시작할 차례도 안 됐다"며 "제가 입고 있는 이 옷 한 벌밖에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우리 가족 전체가 다 같은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농업은행 현지 지점 부지점장인 바랏 다깔(51)씨는 건물 아래쪽이 토사에 잠긴 은행 건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다깔씨는 "은행의 모든 서류나 안쪽에 있던 금고 등이 여전히 다 건물에 있어서 지키고 있는 것"이라며 "오늘부터 빼내기 시작하려고 장비를 갖고 왔는데 아직 비가 내려 언제부터 일이 시작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데 홍수 소식은 조금 미리 알게 돼 직원이나 가족들이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다"면서 "한국인도 몇 명 실종됐다고는 아는데 여기가 정신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마을에서 비교적 위쪽 언덕에 집이 있는 인디라 아디까리(40)씨는 "당시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이상한 큰 소리가 들렸다"며 "사람들이 다 왔다갔다 하면서 도망쳐 우리도 그것을 보고 위쪽 사원으로 대피했다"고 돌이켰다.

아디까리씨는 "이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홍수 사실을)좀 빨리 알게 돼 피해를 당한 사람이 적다"면서도 "지금 이곳 전체적으로 이런 상황이라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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